박씨의 검지는 프레스가 먹어버린 반 토막짜리다 그런데 이게 가끔 환하게 켜질 때가 있다 그가 끼던 목장갑을 끼면 내 손가락에서 그의 검지 반 토막이 환하게 켜지는 것이다 박씨는 장갑을 낄 때마다 그 반 토막의 검지가 가려워서 목장갑 손가락을 손가락에 맞게 접어 넣는다 그 접혀 들어간 손가락은 때가 묻지 않는다 환하게 켜지는 검지의 반 토막이 보고 싶어 나는 그가 끼던 목장갑을 끼곤 하는데 그러면 전신에 전류가 흐르듯 하는 것이다 상처가 켜 놓은 것이 박씨의 검지뿐이랴 과일들은 꽃이라는 상처가 켜 놓은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꺼져 있다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다
<시와 사람> 2003 봄호
최종천
1954년 전남 장성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02년 시집 『눈물은 푸르다』간행. 노동 현장에서 노동과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시 쓰기를 하고 있다.
용접공인 최종천 시인은 적어도 불꽃 튀는 삶을 살고 있다. 서로 맞닿아야 할 것들을 이어주는 삶은 얼마나 소중한 생인가. 좋은 시는 이어주는 시이다. 좋은 삶은 손을 맞잡고 체온을 건네는 자리에 있다. 이 시가 힘을 갖는 것은 노동 현장에서 서로 오가는 장갑이 있기 때문이다. 손이 아니라 상처를 감싸고 동지애를 주고받는 장갑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상처가 또 한 사람에게 건너와서 꽃으로 핀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프레스의 꽉 다문 어금니가 보이는 듯하다. 박씨가 장갑의 검지를 일부러 접어 넣은 게 아니라, 장갑이 박씨의 몽땅한 검지를 우듬지 삼아 꽃봉오리로 맺힌 게 아닐까. 잘린 손가락을 감싸려면 겹꽃잎이어야 하리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이 시를 돌려 읽은 뒤,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차가운 물수건을 펼치자, 거기에 박씨의 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부비고 내 손을 어루만지니, 내 왼손이 처음인양 내 오른손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문득 박씨의 검지가 내 검지 안에 들어와 술잔을 건네는 듯 했다. 최종천 시인의 용접 불똥이 거기까지 튄 것이다. 프레스처럼, 오래도록 입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