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한용운 (1879~1944)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호 만해(萬海·卍海).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저항운동 펼침. 저서로는 장편소설 《박명(薄命)》,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아, 사랑.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당신은 成佛한 것이다. 天堂의 옥좌에 앉은 것이고 세상의 끝에 가본 것이다. 아니다. 사랑은 질기고도 찬란하여서 성불하거나 승천하거나 세상의 끝과 밖까지 따라올 것이다. 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봐라, 세월이 이만큼 흘러도 옛사랑은 잊혀지지 않고 새로운 사랑은 혜성처럼 나타나고 별똥별처럼 사라지고 나는 괴로워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오면 안개 속을 헤맨다. 사랑은 너무 진부하여서 이제 더 이상 소중하지 않고 사랑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것이어서 너무 벅차고 사랑은 흔들거려서 강가의 수풀과 같다. 그리고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우리의 전부이며 사랑은 선승이나 성직자의 孤節을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며 말없이 돌아선다. 이제 그만 누가 사랑을 다른 몸으로 바꾸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