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양파 새우젓이 있다 푸른 물 뚝뚝 흐르는 도장을 찍으러 간다 히죽이 웃고 있는 돼지 대가리를 만나러 간다 돼지국밥에는 쉰내 나는 야성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바닥은 곳곳에 야성을 심어 놓고 파는 곳 그 따위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야성만을 연마하기 위해 일념으로 일념으로 돼지국밥을 밀고 나간다 둥둥 떠다니는 기름 같은 것 그래도 남은 몇 가닥 털오라기 같은 것 비계나 껍데기 같은 것 땀 뻘뻘 흘리며 와서 돼지국밥은 히죽이 웃고 있다 목 따는 야성에 취해 나도 히죽이 웃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면 마늘 양파 정구지가 있다 눈물 찔끔 나도록 야성은 시장바닥 곳곳에 풀어 놓은 것 히죽이 웃는 대가리에서 야성을 캐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
최영철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1984년 무크지 『지평』『현실시각』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일광욕하는 가구』『야성은 빛나다』『홀로 가는 맹인 악사』『가족 사진』『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등이 있다. 제2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계간 『관점21. 게릴라』 편집 주간이다.
평택 대추리 평화 축전에 다녀왔다. 용산 미군 기지가 옮겨가는 대추리에서 주민들은 우리를 그냥 이대로 살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아우성 속에 시도 힘이 될까 싶었지만 우리는 서둘러 전세버스를 타고 평택으로 향했다. 허허벌판에서 만장을 올리고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시낭송을 했다. 우리의 목소리에 미군 기지의 이전이 멈추어 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는 찬바람 속에서 작게나마 어떡하든 힘이 되고 싶었다. 한쪽에선 축전이 진행되고 한쪽에선 돼지국밥을 먹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솥단지에 매달리고 우리는 농기구가 쉬고 있는 대형 창고에서 둘러앉아 국밥을 먹었다. 뭐가 좋은지 히죽거리며 입김을 불어가며 잔치를 벌였다. 국밥은 정말 맛있었다. 돌아오며 내내 궁금한 게 있었으니 오늘 누가 누굴 도와준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대추리 주민의 건강한 야성이 밤하늘에 빛나며 나를 쫓아오는 겨울날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