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은 번번이 파도를 놓친다 외롭고 고달픈, 저 유구한 천년만년의 고독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철썩철썩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같이 바보같이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등단. 난고문학상 수상. 주요 시집으로『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위대한 식사』 등이 있으며, 최근 제7시집『푸른 고집』(천년의 시작)을 펴냈다.
나이 마흔을 넘어 세상을 살아내고, 또한 주변을 이윽히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독하고, 눈물겨운 일이다. 그러기에 고정희 시인은 <불혹>이란 시에서 사람 나이 마흔이면 침을 뱉어도 외롭다고 했던가.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이란 나날이 벼랑이고, 절벽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누가 당신과 나를 이토록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가. 뜨거운 핏덩이 혈육인가, 혈육보다 더 징그러운 자기생존의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천년만년 끝간데 모를 인간이란 이름의 실존적 고독의 상처인가. 무심코 스쳐지나가던 사랑들아. 질기디질긴 성욕처럼 끈질기게 달겨들던 그날 밤 파도와의 옛 추억들아. 그 파도를 붙잡고 싶지만 끝내 그리하지 못하고 따귀나 안겨주는 파도의 사랑에 몸부림치는 저 바보 같은 벼랑의 사랑법.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지칠 줄 모르고, 눈부신 그 푸른 고집으로 끝내 그 자신의 몸을 산산이 부서뜨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대상으로 화하는 눈물겨운 벼랑의 변신. 여기에 우리는 이 시인이 주장하고픈 이 시대의 사랑법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을 죽여야만 그 지고지순한 대상(파도, 바다)으로 화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시인의 욕망이자, 삶에의 변증법적 증거이며, 새로운 삶을 다시금 열망하고픈 끈질긴 바람이기도 하다. 아, 돌아보면 서러운 눈빛의 사람들이여, 부디 오늘도 분투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