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시집 『이 時代의 사랑』 중에서
최승자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 독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79년 『문학과지성』에 「이 時代의 사랑」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이 時代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게 새를 가르쳐 주시겠어요』가 있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는 시인. 그러므로, 지극한 절망의 끝에서 가을을 본다. 저 산의 빛깔과 바람의 온도. 낙엽의 행진처럼 쓸쓸한 풍경들이 스스럼없이 고통으로 체험될 때, 가을은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 찬사되지 않는다. 깡마른 풍경으로 ‘사물’들은 버려지고 몸이 또는 마음이 운신할 ‘모든 길들’에게 선언된 무효. 누구도 연결해내지 못하는 언어만이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떠나간 애인들’을 ‘기억’할 뿐이다. ‘말 오줌 냄새를 풍기’며 ‘폐수’로 고이는, 가을이라는 막다른 현실! 그 끝에서 ‘황혼’을 업은 ‘강물’이 ‘마비된 한쪽 다리로’ 찾아가는 ‘바다’에서 저를 죽이고 말 것을 믿으므로, 더없이 충만한 고통 속에서 묻는다. 여기가 어디냐고. 언제쯤 이 불구의 마음과 지류의 삶이 무한의 바다에서 죽음처럼 고요해질 수 있느냐고. 마음에 추를 달아 끝없이 추락케 하는 ‘개 같은 가을’, 참을 수 없는 아픔이 구차하게 번져가는 ‘매독 같은 가을’, 이 저주스런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