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87년 『실천문학』에 「땡볕」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가 있으며,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마음이 썩는 곳은 어디인가. 열정의 불길이 휩쓸고 간 마음에 찾아오는 저 온전한 고요. ‘기다림’의 이유였던 ‘너’에게조차 내 마음의 기척을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삭여온 시간들을 따라가 본다. 시인은 짧게 말한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났다고. 그리하여 비로소 깊은 ‘산’들의 ‘겹겹’한 골짜기에서 썩은 마음이 ‘물’처럼 흘러내린다고. 그래서 이 시는 한 지점에서 우연히 발생한 단면적인 서정이 아니라 겹겹으로 곰삭고 다져진 시간과 공간의 서사가 된다. 만일 단면에 불과하다 한다면, 유랑의 먼 길을 돌아온 마음이 어느 순간 맞닥뜨린 찰나의 절대 고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가 숨막히는 이유는 무심한 듯 던져놓은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이다. 적막조차 생활로 받아안는 저 무서운 고독의 이미지! 그리고 ‘숨죽여’ 우리는 가을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