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강가에 이르렀다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버드나무 곁에서 살았다 겨울이 되자 물이 얼었다 언 물을 건너갔다 다 건너자 물이 녹았다 되돌아보니 찬란한 햇빛 속에 두고 온 것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버드나무 곁에서 살았다
아이가 벌써 둘이라고 했다
장석남
1965년 인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1991)『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1995)『젖은 눈』(1998)『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는 소생되는 삶이자 동시에 죽음이다. 장석남의 시 키워드는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세계를 현실로 드러내거나 세계에 대하여 발언하지 않는다. 세계 속에서가 아니고 세계 밖에서, 추억 속에서 그것을 재생하고자 하는 무욕한 바람을 갖는다. 그의 시가 꿈결처럼 아름답고 아름답되, 헛되고 헛되며, 슬프고 슬픈 것은 그 때문이다.
* 이 글은 최하림 시인이 장석남 시인의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발간에 부쳐 써주신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