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윤재철
195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2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아메리카 들소>,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등이 있다. 제14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다.
윤재철의 시는 ‘그냥 있음’에 대한 탐구이다. 현대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늘 그냥 있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무엇엔가 규정당하고 입력된 욕망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도시문명 속에서 ‘그냥 있음’을 추구하는 것은 그의 시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 일이다. 하지만 이 ‘그냥 있음’은 또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의 아버지가 무의식중에도 초라한 셋방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지울 수 없는 인간의 본원적 욕구이기도 하고, 우리가 무엇엔가 들려 있는 사이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무엇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도시 속에 황폐해진 모습으로 서서 윤재철은 그냥 있음이 저마다 빛을 발하는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며 꿈꾸고 있다.
* 이 글은 김진경 시인께서 윤재철 시인의 시집 <세상에 새로 온 꽃> 발간에 부쳐 써주신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