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번득이는 눈과 의심 많은 귀를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 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김기택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이 있다.
자연 사물과 인간 세계에 대한 임상적 실험과 관찰을 김기택 시인만큼 철저하게 실행해 옮긴 시인도 없다. 해부학의 도상을 마주 대하고 있는 착각마저 일으키고 있을 정도다. 이는 분명 현대적 증후다. 과거 전통 서정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낯설음과 새로움이, 즉 후기 자본의 음울한 음역을 꼼꼼한 응시와 관찰의 핀셋으로 끄집어내는 시의 집요함이 들어 있다. 이러한 경향과 함께 그의 시편들은 틈새과 허공이라는 화두를 통해 근대 합리주의와 계몽 이성 중심의 분별지가 배타적 영역으로 내몰아 버린 주변과 바깥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의 어떤 시들은 자연 소재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도 생태 패러다임에 충실한 사례를 보여준다. 사물의 어떠한 견고함도 틈새나 허공이 없으면 존재가 무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냉철한의 시선이 아니고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시의 한 경지를 그는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 <쥐>는 집요한 응시와 관찰이 돋보이는 시편이다. 고요 속에서 시인은 ‘불안’과 ‘요란한 소리’들을 감지한다. ‘향기’ 속에 ‘죽음’이, 또한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굶주림’이 있다는 시적 발견은 분명 깊은 사유의 승리이다. 또한 이것은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이면과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하는 투시력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시의 소득이다. 이 시속의 대상인 ‘쥐’는 다름 아닌 간신히 나날의 일상을 연명해 가는 우리 현대인의 불행한 초상이 아닐까.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이야말로 우리들이 어렵게 호구지책을 마련해 가는 간난의 현실이자 나날의 불안한 일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