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밤, 야근을 하고 들어온 중년의 시인이 불도 안 땐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쓰는 밤, CT를 찍어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편두통에 시달리며 그래도 첫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 전동균 시인 프로필
196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중앙대 예술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이, 산문집 『 나뭇잎의 말』이 있다.
산간 마을에 내린 첫눈처럼 맑고 투명한 시인의 마음이 읽혀지는 시이다. 모름지기 시인이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목숨 지닌 것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지녀야 할 것이다. '첫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시작 태도가 무엇보다 순정하거니와 추운 밤 지붕 없는 집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을 까치에 대해서까지 마음이 미치는 것에서 우리는 공명판처럼 떨리는 아주 여리고 섬세한 시인의 애틋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시란 단순한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우주 안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연대 의식에서 비롯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 짧은 서정시편을 통해 문득 섬광처럼 깨닫게 된다. <시인 이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