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보다 큰 거울을 얹은 채 자전거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길의 저 편에서 이 편까지 빛의 통로가, 순식간에, 뚫려 나왔다 이 빛에 몸을 비추고 싶은가? 그가 물었다 다른 곳의 주민이고 싶은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으나 거리는 더 적막했다 규칙적인 페달 밟는 소리가 어떤 절정을 암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려가는 길을 걱정했다 은빛 바퀴가 어지러웠다 편안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未安했고 미안했으므로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만이 뜻을 만들지 너 또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군 지나가는 그에게 나는 여전히 불 꺼진 창문인 모양이다 그에게는 四方 집들이 한결 같다 나는 중얼거렸다 다만 길의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은빛 바퀴 위에서 그가 세상을 다른 곳으로 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 권혁웅 약력
196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대학원 졸업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시)으로 등단. 2000년 제 6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2001) 『시적 언어의 기하학』(2001),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