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용 씨가 위도면으로 발령났을 때의 일이다. 다 아시다시피 위도는 섬이어서 뭍에 집이 있는 공무원들이 꺼리는 곳인데 이 양반은 오히려 여러 가지 생것과 싱싱한 회에 술 먹기가 더 좋아서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여 방 한 칸을 얻어놓고 기거를 하면서 집에도 자주 오지 않고 공무수행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변산면 3분의 1도 안 되는 좁은 섬 구석에 일이 없으니 낮이나 밤이나 낚시와 술 먹는 것이 일이었던 바, 쬐끔 과하셨던지 어느 날 속옷을 보니 치질이 터져서 피가 배어나왔더란다.
하여 난생 처음 술을 좀 참어볼까 하다가 '에라 잡것, 좀 견데봐라!' 하면서 평소 잘 안 먹는 소주를 사다가 그날 저녁 댓병 하나를 비워냈다. 그랬더니 그 이틑날 아침 치질이 툭 터져서 피고름이 한 대접이나 쏟아지고는 그만 치질이 나아버렸다면서, 스무 날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술자리에 앉아도 술을 피하는 나를 나무랐다. 이 양반의 지론인즉슨 '술만 잘 먹으면 모든 것이 다 여의(원활)'하여 술을 안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금용 씨가 30년 공직생활을 술 하나로 얼렁뚱땅 버티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본문 68~69쪽 중에서
▶ 박형진 시인 프로필
1958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 1992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봄편지」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바구니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가 있다. 현재 고향 부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