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는 슬픔의 그늘 김옥영자기 자신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지. 세상은 발붙일 데 없어. 8월 염천 불같이 달아오른 슬레이트 지붕, 한 발자국만 미끄러져도 살이 데고호박넝쿨은 추녀 끝에서 여직 멈칫거리지. 멈칫거릴 시간은 없어. 여름은 곧 가고-허공중에선 누구나 붙잡을 데 더듬는 덩굴손이 되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과 사랑. 태양이 그의 회로를 달구기 전에 태양보다 빨리 잎 피우는 일, 제 그늘 속에 저의 발을 담그는 일.살아 있는 것들에선, 끊임없이 수분이 증발하고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 불볕 드실대는 한낮과 길고 오랜 비 몰아치는 밤을 위하여 집 짓는 사람들. 등뒤에서 느닷없이 무릎 꺾여 꿇어앉기 전에 지붕 위에서건 어디서건 다시 튼튼한 지붕 올리고 땀에 젖은 꿈 하나 고이 들이는 그늘.슬픔이 슬픔의 튼튼한 잎새 하나 펴올려서 슬픔에는 슬픔의 그늘 주는 일고통에는 고통의 그늘 주는 일자기 자신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지. 8월 염천 불같이 달아오른 슬레이트 지붕 위로 기적처럼 무성한 호박넝쿨, 꽃 필 것 다 필 때. ▶ 김옥영 시인 프로필 1952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마산교육대학을 졸업. 1973년 월간 『문학』신인상에 시 당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2년 KBS 다큐멘터리 <문학기행>으로 방송작가에 입문한 후 현재 방송작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