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쫓기듯 꼬리를 감추고 있다. 서리에 데쳐진 배춧잎 얼굴, 노파는 버썩 마른 빵 부스러기를 쪼듯 뜯어먹고 있다. 시래기, 호박나물, 다 팔아도 만원어치도 안 될 것들을 벌여놓고 이리 흘끔 저리 흘끔, 거리고 있다. 아내도 나도 결단코 돌아갈 수 없는 헐벗은 풍경, 낯선 정물로만 앉아 있는 노파. 붕어빵 한 봉지를 건네며 아내가 풍경 안쪽을 안쓰럽게 들여다보고 있다. 한 편의 詩를 건지기 위해, 나는 노파 주위를 눈치껏 맴돈다. 낯설은 풍경을 만들어내며 쓸쓸히 뒷걸음질칠 뿐인
▶ 서림 시인 프로필
본명 최승호.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3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伊西國으로 들어가다』(1995),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1997),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2000) 등이 있으며, 시론집 『말의 혀』, 『한국적 서정의 본질 탐구』 외 다수가 있다. 현재 대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