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갯물에 쩔어버린 삭신이 조생이 한 자루로 뻘밭을 밀고 가던 홀몸 조개미 아짐 읍내 닷새장 막차를 기다리던 감나무가 있었고
흉어철이 들수록 밤이면 혼자서 가락이 높던 갈매기집이 있었다 지금은 폐항도 아닌
신작로만 간신히 살아 나를 불러 세우는 마을 바닷속으로 비 이백년 나이를 꺾어버린 팽나무 영당(靈堂)자리에 비
수십킬로 뻘을 질러 간다는 저 방조제 끝이 어딘지를 나는 묻지 않는다 타는 듯 붉은 노을이 내려 바다도 집들도 바닷바람을 재우던 애기봉도 온통 환하게 몸 속을 열어보이던 그때를 찾아 천천히 걸어들어갈 뿐이다.
빗속으로 물보라 엉키는 바닷가 철책을 지나 갯벌을 건너
▶ 박영근 시인 프로필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1981년 『반시(反詩)』 제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취업공고판 앞에서』, 『대열』, 『김미순傳』,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등이 있음. 제12회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