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문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 이문재 시인 프로필
시인.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제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