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아침에 산을 오를 일이다 어둠이 나를 주위로부터 갈라놓고 한 치 앞 산길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발소리에 마음 기댄 채 산을 오를 일이다 잠시 쉬어갈 일이다 사위 캄캄하여 보이는 것 하나 없어도 허덕이며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 어둠 속에서 되돌아볼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그래서 나도 사라져버린 어둠 속에서 다시 숨결 고를 일이다 어제의 해가 오늘 뜨고 어제의 바람이 다시 머리를 풀어헤칠지라도 메마른 나무에 이슬 한 점 틔워내는 저 산을 보며 새해 새아침에 산을 오를 일이다 오르다가 마침내 산마루에 서면 청한 하늘빛 열고 내게로 오는 새벽을 향해 하염없이 눈길을 보낼 일이다 비록 지금 고난하나 살아 있으매 아름답다고 가슴 아리게 되뇌일 일이다 새벽안개가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해거름까지 가기엔 저리도 아득하지만 어둠의 자궁 속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하늘을 하늘이게 하는 저 새벽별처럼 살아가겠노라 새해 새아침에 바람에게 전할 일이다
▶김수열 시인 약력
1959년 제주 출생. 1982년 『실천문학』 제3호에 시 「어머니」외 3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등이 있음. 제주작가회의 회원, <깨어 있음의 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