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사리 둥근 달이 선창 횟집 전깃줄 사이로 떴다 부두를 넘쳐나던 뻘물은 저만치 물러갔다 바다 가운데로 흉흉한 소문처럼 물결이 달려간다 꼭 한번 손을 잡았던 여인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뜨거운 날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할 수 없는 곳을 통과하는 뻘물은 오늘도 서해로 흘러들고 건너편 장항의 불빛은 작은 품을 열어 안아주고 있다 포장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긴 로프에 매달려 고개를 처박고 있는 배의 안부를 물으니 껍딱은 뺑기칠만 허믄 그만이라고 배들이 겉은 그래도 우리 속보다 훨씬 낫다며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묻는다 생합, 살 밑에 고인 조갯물 거기다 한 잔 소주면 좋겠다고 나는 더듬거린다. 물 젖은 도마 위에서 파는 숭숭 썰려 떨어지고 부두를 덮치던 파도는 어느새 백중사리 둥근 달을 데리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선다.
- 출처: 시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창작과비평사 2002)
▶ 강형철 시인 약력
1955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고 숭실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해망동 일기」「아메리카 타운」 등을 『민중시』 제2집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5월시> 동인.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