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호 태풍 루사(Rusa)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상처'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비록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김규동 시인의 「안부」의 첫 구절로 '안부'를 묻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알려다오 / 살았는지 / 죽었는지 / 그것만이라도"…. 그런데 또 다시 제16호 태풍 신라쿠가 북상중이라니 정말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회원 여러분, 혹 태풍 피해는 입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의(失意)의 표정으로 하늘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피해 지역민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타자(他者)의 슬픔과 고통의 크기를 헤아리는 인정(人情)이 그리워집니다. 태풍 피해를 입은 회원이 계신다면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안 부
김규동
알려다오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만이라도 분계선이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한다면 땅속 깊이 바닷속 깊이 잠겨서라도 소리쳐다오 죽어서라도 외쳐다오 혼백끼리라도 만나서 이 원한 풀어보자고 너 혼자 낫게 살려 하지 마라 낫게 살려면 거짓말해야 하는구나 거짓말로 논문이 되겠느냐 시가 되겠느냐 끊어진 형제의 마음 이어지겠느냐 말을 많이 하지 마라 고상한 말보다는 앓음 소리가 더 확고한 말이구나 말로 통일이 되겠느냐 하늘은 멀고 땅은 어두우니 스산한 까마귀야 펄럭이는 독나비야 나는 믿고 싶다 온 세상 그 무엇보다도 뛰고 있는 이 심장의 고동소리를.
▶ 김규동 시인 약력
192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연변의대에서 수학했다. 1948년 <예술조선>지를 통해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50년대 초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는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길은 멀어도>(1991) 등이 있고, 시론집 <새로운 시론>(1959),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를 상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