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처의 고향은 가지 못하는 땅 함흥하고도 성천강 물맞이 계곡 낙향하여 몇 해라도 살아보재도 내 처의 고향은 닿지 못하는 땅 그곳은 청진으로 해삼위로 갈 수가 있어 싸구려 소주를 마시는 주막이 거기 있었다 솔개가 치운 허공에 얼어붙은 채 북으로 더 북으로 뻗치는 산맥을 염원하던 땅 단고기를 듬성 썰던 통나무 도마가 거기 있었다 등짝짐에 철모르는 아이를 묶고 우쑤리로 니꼴스끄로 떠나갈 때 바람도 서러운 방향으로 휘돌아치고 젊은 장인이 불알 두쪽에 맨주먹을 흔들며 내려오던 땅 울타리콩이 새끼를 치고 홀로 국경을 지키는 오랑캐꽃이 거기 있었다
▶ 정철훈 시인 약력
1959년 광주에서 출생했으며, 국민대 및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을 졸업하고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7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백야」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살고 싶은 아침』(2000)을 출간했다. 현재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전문가 촌평]
정철훈의 시는 이방(異邦)과 교신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이산의 가족사적 배경과 시인 자신의 러시아 유학 체험이 뿌리박고 있을 터인데, 그리하여 그의 시적 촉수(觸手)는 <홀로 국경을 오랑캐꽃>이 핀 변경을 지향한다. 광막한 겨울이 지배하는 변경, 투쟁 속에 연대가 빛나는 인간적 삶의 시원(始原)의 장소러서 북방을 사유하면서 시인은 건너갈 대륙을 상실한 <지금 이곳>, 남한 사회를 침통히 응시한다. 저주받은 매혹 속에 도시에 포획된 시들이 횡행하는 최근 시단에서 용악(庸岳)과 백석(白石)의 황홀한 부활을 꿈꾸는 그는 정녕 이방인, 도시를 배회하는 한 마리 푸른 이리가 아닐까? / 최원식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