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스티노
황지우
자전거를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태동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신촌역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 황지우 (1952- )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철학과,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이후, 《나는 너다》(1987), 《게눈 속의 연꽃》(1991),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9) 등 다수. 김수영문학상, 김소월문학상, 백석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