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선 - 정지용
이 아이는 고무뽈을 따러
흰 산양이 서로 부르는 푸른 잔디 우로 달리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범나비 뒤를 그리여
소스라치게 위태한 절벽 갓을 내닫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내처 날개가 돋혀
꽃잠자리 제자를 슨 하늘로 도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내 무릎 우에 누온 것이 아니라)
새와 꽃, 인형, 납병정, 기관차들을 거나리고
모래밭과 바다, 달과 별 사이로
다리 긴 왕자처럼 다니는 것이려니,
(나도 일찍이, 점두록 흐르는 강가에 이 아이를
뜻도 아니한 시름에 겨워
풀피리만 찢은 일이 있다)
이 아이의 비단결 숨소리를 보라.
이 아이의 씩씩하고도 보드라운 모습을 보라.
이 아이 입술에 깃들인 박꽃 웃음을 보라.
(나는, 쌀, 돈셈, 지붕 샐 것이 문득 마음 키인다)
반딧불 하릿하게 날고
지렁이 기름불만치 우는 밤,
모와드는 훗훗한 바람에
슬프지도 않은 태극선 자루가 나부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