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가시덤불에서 - 한용운
죽은 줄만 알았던 메화나무 가지에 구슬같은 꽃망울을 맺혀 주는
쇠잔한 눈 위에 가만히 오는 봄기운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밖에 다른 하늘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모든 꽃의 죽음을 가지고 다니는 쇠잔한 눈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구름은 가늘고 시냇물은 얕고 가을 산은 비었는데
파리한 바위 사이에 실컷 붉은 단풍은 곱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 부르고 울음도 웁니다.
그러한 <자연의 인생>은 가을 바람의 꿈을 따라 사라지고
기억에만 남아 있는 지난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일경초(一莖草)가 장육금신(丈六金身)이 되고 장육급신이 일경초가 됩니다.
천지는 한 보금자리요 만유(萬有)는 같은 소조(塑造)입니다.
나는 자연의 거울에 인생을 비춰 보았습니다.
고통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님을 떠난, 나는 아아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