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술잠에 빠진 아버지
느리게 해독하는 여름
아버지의 발바닥엔 책처럼 두꺼운 각질이 쌓여 있다
가끔 무심히 만져본다
그것들을 깎아다 손바닥에 잘 모아들고
볕 좋은 곳에 묻어놓으면
무언가 피어날 것 같다
내년 봄에, 아님 그후라도
박연준,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박연준의 시 「수화」는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문학동네, 2012)에 수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긴긴 술잠에 빠진 아버지, 느리게 해독하는 여름’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애잔한 감정이 보입니다.
두꺼운 아버지 발의 각질을 깎아다, 볕 좋은 곳에 묻어놓으면
무언가 피어날 것 같다고 말하는 화자. 생명력을 다한 살점을 묻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이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더
아버지와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묻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