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 도종환
너의 운명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육지의 발끝에라도 달려가 붙어 있거나
아니면 물 속으로 차라리 잠겨 버릴 일이지
이만큼 거리를 두고 외따로 떨어져
댓잎으로 바람 향해 울을 치고
아침바다같은 것들만 네게 오게 하는 것이
오지 못하게 한 것들로 한없이 외롭게 사는 것이
너의 운명은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떠나온 곳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거나
아니면 네 기슭에 인가 몇 채라도 지어
고즈넉한 사람 한둘쯤은 살게 할 일이지
제 깊은 곳에 상사화 몇 포기 자라게 하고
저녁마다 언덕 위에 왕달맞이꽃 키우면서도
바위너설이 물살이 다 문드러지도록 홀로 사는 것이
부드러운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댓잎 같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 도종환,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