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녹원(鹿苑)의 여명 힘의 샘꼬는 터지다 - 오상순 병들어 여윈 몸이 힘이 그리워 떨리는 손에 붓을 잡아 사자(獅子) ! 사자 ! 사자 ! 간신히 세 번 쓰고 나니 하염없는 눈물이 북받쳐 오른다 이윽고 힘의 샘꼬가 터지는 듯 속모를 태초의 힘의 심연이 소용돌이치며 북받쳐 올라 나의 육체는 매여져 터져 나갈 듯 터져 나갈 듯 돐맞이의 독백 오늘은 나의 돐맞이 하는 날 머리는 하늘을 이고 발은 대지를 딛고 두 팔 활짝 벌려 하늘과 땅 사이 두려울 것 없이 버젖하고 힘찬 입체로 우뚝 서는 날 엄마의 태중 유암(幽暗)의 열달의 세월 형성과 생장의 비밀의 투쟁을 거쳐 으앗 소리 지르며 땅 위에 굴러 떨어져 태양의 빛을 본 황홀한 3백 65일 우리 인간 조상이 만유의 영장 만사의 령도(領導) 천지 주인공으로서 우주를 제패하고 활살(活殺)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승리자로서의 영관(榮冠)을 전취(戰取)한 동기는 실로 대지를 입체로 딛고 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몸을 뒤쳐 엎드려보다 밀어보다 기어보다 다시 뒤쳐보다 엎어보다 엄마 손에 이끌려보다 벽을 잡고 벽도리 하여보다 천신만고 이제 겨우 비장하게도 저 혼자 손 떼우고 따로 서보는 날 그리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뎌 걸어보는 날 오늘은 나의 돐 잡히는 날 평면에서 입체로 천지 사이에 엄연히 독립해 서는 날 ! 인류의 새로운 역사창조의 대행진의 계열에 보조 맞추어 첫 발걸음 내어딛는 날 태고적적 까마득한 그 광겁(曠劫)의 옛날 우리 조상이 오늘 나와 똑같이 하늘과 땅 사이 그 중심에 기적같이 두 발로 우뚝 서던 날 그 날 그 순간 천지는 진동하고 산천초목도 나부껴 떨고 비금(飛禽)도 주수(走獸)도 발길을 멈추고 땅 위에 기어 움직이는 벌레들도 놀라 움츠러 들고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도 호랑이도 숨을 끊고 떨었거니 천태만상의 눈 가진 존재는 모두 경악한 가운데 눈과 눈을 부릅뜨고 눈과 눈 모아 군호 맞추어가며 속으로 부르짖었거니 천지중심에 위치를 점한 듯 두 발로 우뚝 선 저 동포를 보라 저 사람을 보라 ! 경악하다 경탄하다 찬탄하다 드디어 그 영광에 빛나는 권위와 존엄앞에 경견히 머리 숙이고 최대한의 경이와 경외에 가득 찬 환호와 환희에 넘쳐 파도처럼 우림(雨霖)같이 진동하는 찬송의 대합창을 천지가 무너지라 불렀거니 인간 동물의 아들 딸들이 두 발로 천지를 딛고 천지에 우뚝 서서 걷고 움직이는 이 엄숙한 사실은 지구가 움직여 돌아가는 사실보다도 더 엄숙하고 확실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 인류 자신이 유구한 역사의 세월을 계계승승 직접 실천하는 사실이오 진리이기에 오 세계와 만유역사의 행진과정에 크나큰 혁명과 기적과 영광의 눈부신 역사적 순간이어 오늘은 나의 돐맞이 하는 날 천지중심을 나의 두 발로 힘차게 딛고 우뚝 서는 날 나와 인류의 영원한 입체창조의 거룩한 첫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