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萬皆)가 모두가 없는
어둠의 품속에 안기어
조으는 듯 잠든 듯한
깊고 깊은 밤 나는 홀로
폐허의 빈 들 한복판에 서다
하늘 잠근 구름을 새어서
이슬과 서리의 간색(間色)의 감각 가진
가루같이 가늘고도 고운
힘 없는 새음의 분말도 같은
늦은 가을의 가는비
어둠의 고운 체(替)를 새어 나리다
가는비 내리는 어둠의 폐허의 하늘 우러러
나의 얼굴 내여놓고 눈감도다
가는비는
나의 속으로 서리어 오르는
눈물의 이슬섞어 입술을 거쳐
가슴 위에 흘러 떨어지다
밤은 더욱 깊어가고서
비는 이상하게도 그윽한데
나의 혼은 홀연히 놀라 눈뜨다
어디로부터인지 발밑에 바삭하고 떨어지는 폐허의 낙엽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