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녹원(鹿苑)의 여명 허무혼의 독백 - 오상순 하염없이 스러져가는 연기 끝에도 한 실재의 발자욱 ! 땅위에 굴러 떨어지는 가련한 한 송이 꽃 속에도 그이의 그윽한 한숨 ! 나의 얼굴을 스쳐지나 가는 가벼운 바람 가운데도 그이의 미소 ! 하염없이 스러지는 촛불 밑에도 그이의 휘바람소리 ! 창틈을 새여 들어오는 티끌 속에도 그이의 눈동자 ! 깊은 침묵 깜깜한 어둠 속에도 그이의 우뢰소리 ! 허무혼은 누구나 엿들을세라 가만히 일어나서 들창틈으로 엿보아가며,입도, 채떼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소리로 가만히 혼자 중얼중얼, 고개를 외로 기울이며...... 허무의 문 열라는 별안간 무엇의 소리에 깜짝놀라, 숨을 끊코 멍멍히 뻣뻣히 서다, 눈도 깜적이지 못하고, 허무의 밤은 깊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