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인 양
태고정적이 깃들인
원(阮) 앞 뜰 마당 한복판에
창공을 꿰뚫고 우뚝 솟아 있는
무성한 대추나무 한 그루
번창한 가지마다
자연의 염주인 양
주렁주렁 맺힌
푸른 대추 알맹이들......
날마다 깊어만 가는
가을바람 속에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익어가거니......
대추알들은 자연의 정액의 결정
가을을 빚어내는 혈액의 핵
뭇 결실을 익히고야 말리라는 듯이
숭엄하게 쪼이는 한없이 그윽하고
거룩하고 다사롭고 따가운 가을 햇살의 빛나는 정열과
속 모르게 신비한 밤의 정기와
드높은 가을밤 하늘에
진주알인 양 총총들이 들어박혀
하늘을 잡아 흔들면
우수수 구을러 쏟아질 듯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과의
활살자재(活殺自在)하고 조화무궁한
가을 바람의 애무가 죽도록 그리웠어라
그러기에
사랑에 주리고 목말라
차츰 영글어가는 귀뚜라미 소리 영롱하고
달빛 머금은 이슬방울 찬란한 가운데 가을 바람과 더불어
무슨 영겁의 밀약이나 있는 듯
그 무슨 귓속이나 한 듯이
각각으로 깊어가는 가을바람 속에
붉게 물들어 익어가거니......
이 대추를 열매 맺으려
가을은 이 땅에 찾아 오고
이 열매는 가을을 위하여
그 빛이 짙어가는 것이어니......
그야말로 핏빛으로 대추알들이
새빨갛게 무르익거들랑
그 육신과 아울러
그 정신 ! 그 정념(情念) !
저 대추나무만이 아는
대자연의 그 속모를
정(精)과 색(色)과
정(淨)과 동(動)과
진(眞)과 미(美)와
비(秘)와 성(聖)을......
여지없이
내 만끽하리, 만끽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