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 열리고 닫히자
앉아 있는 내 앞으로 몸집 작은 청년 곧바로 와 선다
뜻밖의 자주색 긴팔셔츠로 눈앞을 커튼 친다
자주색 좋아해 자주에 나도 모르게 감응해들다가
셔츠 너무나 단정하고 너무 발라서 훅 놀란다
잠긴 일곱 단추의 일렬도 놀랍도록 자로 잰 일렬
일곱 단추 깨끗한 눈마다 상아빛 광택
이전의 이전부터였다는 듯 거둘 수 없다는 듯 빛이
그런데 단추 이토록이나 꼭바르게 잠글 수 있나
잠금이란 게 이토록이나 완전하게 무결일 수가
아름다울 수가 훌륭할 수가
저절로 청년의 얼굴을 올려다봐야 했다
스물은 넘었을까 이제 막 스물일까
작은 키에 마른 몸피
타이는 하지 않았고
어린 청년 어떤 감각에 자주색 셔츠를 다 골랐을까
셔츠의 다림질은 또 이토록 다림질일 수 있을까
천 질감도 참기 어렵게 좋아 보여 만져보려 손 뻗어야 했다
철커덕 컥, 바퀴 마찰소리에 뻗었던 손 그만 잘려
철교 아래 강물 속으로 나뭇잎처럼 빙빙 돌며 떨어진다
모른 척 다시 눈앞 커튼 친 자주 셔츠를 뚫는다
이렇게 극단정의 구김 한끝 없는 셔츠 스물 삶의 안쪽에도
녹슨 체인은 철컥인다는 옹알이가 맥락도 없이
맥락도 없이 강물로부터 올라와 무릎 위를 긴다
뭘 하러 가려는가 마른 안구를 비비며 어디로 뭘
강물에 빠지면 헤엄도 못 치는데
천둥, 번개 같은 것
돈과 일, 내일의 안녕이라는 것에는 초점 한번 못 맞추고
지하철 칸에 앉아 왜소한 청년의 자주색의 자주
잠긴 셔츠 단추에나 겨우 초점을 맞춰 뚫어보면서
셔츠의 단추라는 게 북두칠성하고 상관있나 일곱을 달게
상상력도 없는 창작을 하다가
선릉을 놓칠까 선릉이란 이름을 불안히 쥐고
강변에서 짧은 갈대숲 바람에 이울었다가
잠실나루로 더 맹목 신천을 바라며 멍히 가네
그러나 극단의 자주셔츠 단추의 스물 청년이여
그대의 단추와 초점을 맞추며 나는 쉬었네
그대의 단추와 초점이 맞을 때 나는 뚫려
어디로 뭘 하러 흘러가지 않고 영원의 구멍에 들었네
그대 셔츠 단추의 일곱 별로 옮겨 맺혀
앞에 앉아 있는 빈 형상에게
상아빛 은은한 광택을 되비추었네
이전의 이전부터였다는 듯 그렇게
그때 나는 쉬었네 무결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