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식탁에 올려놓고
얼음물을 붓는다
산봉우리에서 구름이 사라지고
가문비나무와 졸참나무 사이에
바람이 머무는 동안
한 모금 마시고
또 물을 붓는다
오후의 햇살이 식탁을 가로지르자
갈색도 아니고 분홍은 더욱더 아닌
서재가 가라앉는다
달력의 숫자 하나가
머리부터 흠뻑 젖는다
폴리에틸렌 프탈레이트 투명 컵 안으로
前.後.左.右.上.下.어제.그제.그리고.太初가
수면 아래
꼭꼭 숨어 있다
이제 또 물을 부으면
2.
흰 구름 아래, 하얀 날개
백로 한 쌍이 무논 위를 저벅저벅 걷다가
아가의 속살처럼 날아오른다
봄 가고 여름이면
언제까지가 꽃이고
어디서부터가 열매일까
그 경계로 물이 차오르고
그 다음은 푸른 적막이어서
벼는 여름 햇살에 익고
소금쟁이는
네 발로 수면에서 버티는 중
논이 하늘에 빠지지 않게
하늘이 논에 젖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