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믿어본다는 것이
이렇게 멀리 와 버렸다
거리의 간판들이 죄다 쏟아지고
흩날리는 글자들이 서로의 몸을 더듬는 아침
나는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너를 용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둔 손이
누군가의 발끝만큼 부끄러워질 때
네가 딛고 서있는 행성의 자전축도
몇 도쯤은 기울었으리라
문턱은 낮아지고 열매는
부풀었으리라
그래도 몇 문장만으로
너를 잡아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꽃잎은 지기를 포기했는지 모른다
증오는 옷깃에서 옷깃으로
쉬지 않고 번지고
우린 얼굴 빠진 초상화처럼
한없이 무기력해졌지
하루는 시들해진 화분 속에서
당신이 버리고 간
습기를 들여 마셨다
너무 단단해서 보기만 해도
깨져버릴 것 같은 것들
슬퍼도 울지 못하는 것들이
그 안에서 소리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