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는 상수리나무 여인숙이 있다
한때 저마다의 방에 불을 밝히고
끊임없이 속살거리며 사랑이 묵어가던 곳
이제 아무도 머물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찢긴 이파리를 깃발처럼 매달고
제 발등에 패인 굵은 주름만 바라보고 있다
한낮의 햇살이 또르르 이마 위를 굴러가면
나무는 길게 하품을 한다
유일한 손님인 다람쥐들이
하늘로 난 창을 열고 저희끼리 웃는다
새 몇 마리가 굽은 등 위에 날아와 앉는다
가끔 물소리에 온몸이 젖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져
물 속 깊이만큼의 그리움을
가만히 발밑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