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류의 계절이 한목에 낮아진다
턱없이 웃자란 봄 쑥과 초여름의 망초 꽃이 한목에 베어진다
시큼하게 꺾인 풋사랑을 잘라먹듯 여름을 갈아치운다
긴장한 곳곳에서 풀물 빠지는 냄새가 난다
풀풀, 혼쭐 난 물관이 터지고
그 안 닫혔던 지도가 열린다
태양을 달구던 설익은 날짜들 가볍게 열리고
밑동으로 열린 간절기가 쿨럭거린다
저의를 숨기기에 충분한 일정이다
환생을 벗어놓고 윤회 쪽으로 사라지던 파충류와
휘어지는 태양의 방향을 무던히 밝히던 들꽃까지,
참수되는 것의 허물은 해탈이다
잘린 풀에선 소리가 새나온다
여름내 물든 풀빛 휴식에 드는 기척이 들리고
내 가슴에서 잘려나간 미식한 말이
푸르게 말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갈아엎는 지독한 풋내다
백로(白露)가 털어낸 바람 한 점 둥글게 말리는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