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감나무 아래 허리를 굽히는 중이에요
붉은 감이 봉긋한 입술을 부풀리고 있어요
뜨겁고 축축한 아궁이 앞에서 아이 넷을 낳은 당신
나무줄기에 붙은 유충들의 허물을 집어올리는 당신
뒤꼍 대숲을 마당 안쪽으로 쓰러뜨리는,
저수지 물밑에서 걸어와 양철 대문을 흔들고
도라지꽃봉오리를 탁탁 터뜨리는 손끝에서
당신과 나의 시간이 사라지고 있어요
당신이 허리를 굽힌 감나무 아래
허공에 한 마리씩 매달려 있어요 고등어들
비리고 비린 고등어들 단단한 몸을 솟구쳐서
허공에 매달린 고등어들, 똑 똑 한 마리씩 따서
당신은 짚투성이 돼지들 앞에 풀어놓아요
우물처럼 지면 아래로 깊어져버린
빈집, 감나무 아래에 당신의 시간이 흠뻑 고였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당신과 나를 허공에 못 박았던
짙은 비린내, 사라지고 있어요
당신은 이 집을 비운 채
물동이에 둥둥 뜬 감잎을 걷으시고
아이들이 모두 이 집을 떠나고
이 집 부엌에서 뜨거운 물이 끓고
검은 머리의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검은 머리의 당신이 이 집으로 들어오고
누군가 이 집의 지붕을 세우고
누군가 정지문을 삐그덕 열어젖히고
이 집의 빈 마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잔뜩 구겨진 몸을 일으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