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폐활량을 훔쳐오고 싶었다
원주율을 기억하는 렌즈에 초점을 맞추며
풍경의 그늘에 깔린 숲을 필름 속에 담아냈다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움직일 때마다
어둠의 필름 속에 들어가기 싫은 나무들은
뿌리부터 빨아 당겨 광합성을 펼쳤다
얼기 직전의 저수지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조율되지 못한 새들의 비명을 주워 먹으면서
호흡을 놓지 않는 나무들의 언어들은
보이지 않게 한 바퀴씩 늘어나고 있었다
귓속말밖에 할 줄 모르는 화법의 흔적들,
귀가 잘려나간 고흐처럼 귓바퀴를 잃고
홀로 벌레들에게 아삭아삭 씹혀가는 그루터기는
조리개가 어두워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베인 테두리부터 서걱거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수직으로 자라나는 나무들의 언어
구름은 우주의 각질이 되어 부스러지고
생채기난 가지 사이로 안부를 전하는 방법은
나무들의 자라나는 반대방향으로 인화되는
나의 방법과 달라 꼭짓점이 되었다
배꼽의 내면 속, 깊은 뿌리가 흔들리자
이제 그만 속삭여도 된다고 소리친다
나이테들이 걸어 나와 우주를 감아 돌리는
인화되지 않은 사진 한 장, 가지마다
펄럭이는 우리의 어긋난 화법과 촬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