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위의 숟가락을 보는 나이 - 배영옥 사람들은 가까운 사이임을 강조할 때 그 집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안다고들 한다 그 말이 단순히 숟가락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마흔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생애는 두레밥상 위에 숟가락을 놓으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숟가락들 어제 옆집 아버지 친구는 서낭당 언덕에서 돌멩이에 걸려 돌아가시고 건넛집 아이엄마는 오늘 딸 쌍둥이를 낳았다 나도 이제 상 위의 숟가락에 숨은 배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나이 수저통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숟가락을 상 위로 옮기는 가벼운 노동을 아직 생각이 어린 아이들에게 시킨다 몸과 생각에 물기가 많은 아이들은 죽음과 생의 신비가 숟가락에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따닥따닥 말발굽 소리를 내며 아이는 상 위에 숟가락을 식구 수대로 가지런히 놓고 있다 눈대중으로 숟가락 숫자를 헤아려본다 가장 귀중한 숟가락을 나는 이미 스무 살에 잃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