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갈피 - 권대웅 오래된 장롱을 열었을 때처럼 살다보면 세월에서 문득 나프탈렌 냄새가 날 때가 있다 어딘가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사랑이 두고 온 마음이 쿡, 코를 찌를 때가 있다 썩어 없어지지 못한 삶이 또 다른 시간으로 자라는 저 세월의 갈피 들판에는 내가 켜놓은 등불이 아직 깜박이고 정거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눈물들 아 사랑들 지붕을 넘어 하늘의 계단을 지나 언덕들 숨어 있던 계곡들이 일제히 접혔다 퍼지며 붕붕 연주하는 저 세월의 아코디언 소리들 인생의 노래가 쓸쓸한 것은 과거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살면서 나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골목을 돌아설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익은 바람처럼 햇빛 아래를 걷다가 울컥 쏟아지는 고독의 멘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