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래를 위하여 - 정일근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 있다면 당신의 전생(前生)은 분명 고래다 나에게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와 사랑은 바다에 살아 떠도는 같은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불쑥, 수평선 위로 제 머리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사랑의 모두를 꺼내 보여주지 않듯 고래도 결코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이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는 다시 불러낼 수 없어 저기, 고래!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고독한 사람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다시 퇴화해가고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 내게 슬픔이란 말 되었다 바다 아래서 고래가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부근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함께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밑바닥 같은 곳에서 소금 눈물 펑펑 솟구친다면 이제 당신이 고래다 보고 싶다,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는 그 말이 고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