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견딜 수 없는 건 나, 그리고 너.
겨우 생존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칼날, 버릇처럼 붙이는
안녕! 뒤에 숨겨진 무관심과 자잘한 계산들
풀리지 않는 생의 방정식. 왜? 또......
담배 한 개비가 타는 시간,
절망이 피어오르다 희망과 교대하고
물렁물렁한 것들이 단단해진다
가슴을 쥐어뜯다가도
금방 살아갈 구멍을 찾고
꿈을 꾸면서도 포기하는 나.
날마다 조금씩 자기를 파괴하면서
결코 완전히 파괴할 용기는 없었지
2.고인돌
선운사 가는 길에 고인돌을 보았다
시커먼 돌덩이들이 시처럼 반짝였어
그만 멈추고픈 가슴이, 오래된 죽음을 보자 팔팔 뛰었지
이천오백 년 묵은 허무 앞에서 일 년밖에 안 된 연애는
허망할 것도 없었어. 티끌도 아니었어
단단한 허무에 엉덩이를 비비고 물을 마셨지
돌덩이들의 무시무시한 침묵,
이끼 낀 역사가 바람에 나부꼈어
사랑하고 싸우던 육체도 영혼도 썩어 증발했으니
여기, 엄청난 비유가 누워 있으니
멈추어라! 생각하며 말하던 것들이여
순간에서 영원으로 비약하는 인간의 서투른 날개짓,
천하를 주무르는 어떤 고매한 사상이
이 무거운 적막을 깨뜨릴 수 있는지
내 속에 고인 침이 돌로 굳기 전에
붙들 무언가가 필요해
살아가려면 어딘가에 목숨을 거는 척이라도
무르팍에 쌓이는 먼지를 견디려면
한밤중에 버튼을 눌러야 해
그래서 네 이름을 부른 거야, 알겠니?
3. 고인돌의 질투
시커먼 돌덩이들 옆에 봉긋 솟은 푸른 봉분 두 개.
늙은 주검에 이웃한 싱싱한 주검이 눈부셔,
마주보던 무덤의
죽어서도 나란한 흙더미들의 통속을 질투했던가
4. 다시 선운사에서
옛사랑을 묻은 곳에 새 사랑을 묻으러 왔네
동백은 없고 노래방과 여관들이 나를 맞네
나이트클럽과 식당 사이를 소독차가 누비고
안개처럼 번지는 하얀 가스...... 산의 윤곽이 흐려진다
神이 있던 자리에 커피자판기 들어서고
쩔렁거리는 동전소리가 새 울음과 섞인다
콘크리크 바닥에 으깨진,
버찌의 검은 피를 밟고 나는 걸었네
산사(山寺)의 주름진 기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