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동자 위에서 - 최정애
2424 차에서 사라진 시계를 생각한다
창으로 사라진 마론 인형의 모자를 생각한다
환풍기 속으로 사라진 레몬 향을 생각한다
정오 속으로 사라진 골목을 생각한다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생각한다
하얀 드레스가 나부끼는 카페트 위에서, 커튼 사이로 안개비 떠다니는
백야(白夜) 위에서, 크림 빛 케이크, 밤이 만발한 촛불 위에서, 레드 와인을
마시는 뜨거운 입김 위에서, 무수히 낭비한 금빛 구두 위에서, 그의 눈동자 위에서
빗소리에 부서진 잉크 방울을 생각한다
비누 위로 흘러내린 불면의 밤을 생각한다
포크 레인에 찍힌 머리핀을 생각한다
곤돌라를 타고 간 달을 생각한다
방에서 사라진 나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