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책 - 박승미
자산어보를 읽다가
오징어의 먹물로 썼다는 글씨가
의심스러워졌다
싱싱한 갑오징어 먹물을 붓에 찍어
화선지에 댓잎을 그려 보았다
먹물이 화선지를 만나자 황송하게도
금빛으로 찬란하더니
물기가 마르면서 황금빛은 거치고
다만 갈색으로 완연한데
댓잎이 바람에
그나마 색이 날아가 버릴까
두르르 화선지를 말아 놓았다
님기다림에눈물마를날이없던한여인이
인편에받은편지가온통하얀여백만이라
그리움이복받쳐서편지에얼굴묻고섧게
울고나보니눈물젖은편지가구구절절사
랑이더라고그말이오늘까지전해오는데
화선지를 펴 보았다
바람인 듯 그림인 듯
그리움인 듯
흑산도 그 먼 섬이
내 안에서 출렁이는
자산어보, 바다를 품은 책을 그만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