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처럼 - 설태수
― K에게
기억 속에 가물거리던 그대 모습을
오랜만에 본 그 날.
내 안으로 기분 좋은 전류가 흘러들었어요.
지금, 오리나무와 참나무의 금빛 갈색 잎들은
後光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는데요.
해가 산 능선 쪽으로 기울수록 단풍의 광채는
하늘로 상승하고 있답니다. 그것을 배경으로 한
지는 잎들과 새들의 소리도 후광의 한 정경이지요.
나무 꼭대기에서는 잎들이 일렁이는데
그럴 때마다 그 언저리에서 맴돌던 햇살과 바람이
마구 쏟아지곤 해요.
예수와 석가의 후광도 이처럼 멋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묘하게도 이 풍광에
그대 얼굴이 오버랩 되곤 한답니다.
한참을 이런 광경 속에 있으니, 침묵 속에 잠기는 것 같아서
걷기 시작했어요. 작은 돌을 툭 차기도 하면서요.
바람 따라 흩날리는 형형색색의 낙엽들.
그 잎들 너머로 멀리 있는 인수봉이 눈에 들어왔어요.
걸을 때마다 신호등 간판 건물 등에
그 봉우리가 잠시 가려지긴 했지만
몸을 바꾸면 다시 보이곤 하지요.
이런 저런 일상으로 그대 얼굴 또한 종종 잊혀질지 몰라도
그대가 거느린 여운이야 어디 쉽게 지워지겠어요?
그대에겐 보는 이를 환하게 해주는
은은한 빛이 있으니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은 기분 좋은 겁니다.
늘 기분 좋으면 마음이 정화된다는 말도 있지만
가끔 회상하는 것으로도 썩 괜찮은 일이지요.
방금, 큼직한 후박나무 잎이 쿵 떨어졌어요.
하나의 세계를 품은 그 소리.
들리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