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 이경림
한가한 휴일 오후였네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와 일에 지친 아버지를 모시고
연안부두에 있는 해수탕에 갔다 오는 길에
새로 단장했다는 아암도(雅岩島)에 들렸네
분홍 노을이 뒤덮인 뻘밭 위에는 분홍 갈매기들이 날고
밀물인지 썰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분홍 바다가 저만치서 철석 거렸네
- 노을이 좋구나
분홍 백발을 날리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네
- 사흘 후면 우리가 결혼한 지 오십 년 되는 날이다
어제 같은데……오래……살았다……너희 엄마……
고생 많이 했지……참 이쁜 사람이었는데……이렇게……
정신까지 흐려졌으니……
분홍 뻘엔 뭔가 분홍인 것들이 곰실거렸네 조막만한 도 요새 무리가
분홍 꽃무리처럼 피어 있었네
-오늘은 내가 저 노을 값으로 저녁을 사마
-아버지두……
그때 우리는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무엇에 취해 오래 서 있었네
그날 노을 값으로 아버지가 사시는 분홍빛 저녁을 먹고
우리는 이슥해서야 돌아 왔네
그리고……사흘 후,
아버지는 문득 쓰러지셨고……십여 일 후 돌아 가셨네
그 무슨 분홍빛
거짓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