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 - 최춘희
벽 안쪽으로부터 조금씩 빗물 스미더니
슬금슬금 바닥에서 천장까지 검은 갈퀴손 조심스레
도둑고양이처럼 뻗어 가더니, 지하 셋방 가득
막무가내 참았던 속울음 쏟아낸다
울증과 조증사이 경계를 잃어버린 한 사내
뿌리도 없이 떠돌던 부랑의 날들 허공을 숙주삼아
곰팡이 꽃으로 맹렬하게 독을 피워낸다
우기의 먹먹한 창틀 갉아 먹으며 배고픈 빗줄기
방 하나를 다 제 뱃속에 들여 놓고도 성에 안차서
허기진 입 한껏 벌리고 딱딱하게 부푼 공갈빵 세상
짐승처럼 뜯어 먹고 있다
썩어 문드러져 습기찬 틈 비집고 사방 벽으로 막힌
어둡고 축축한 방에 유령처럼 누워있다
갈 곳 몰라 서성이던 그 밤의 골목길에서
애써 외면해 버린 불안과 공포 절뚝이며 찾아오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겠다는 듯 쓰나미로 몰려오는
깜깜한 폭우의 시간들
얼굴이 지워진 늙은 무녀가
불빛 한 점 없는 세상에서 물에 퉁퉁 불어터진
달빛 영혼을 뜰채로 건져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