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 강은진
어떤 손놀림에도 일어서지 않을
평온한 유방을 가졌기 때문에
바람에게 여러 갈래 길을 터주는
성근 머리칼을 가졌기 때문에
빈 등을 쓸어줄 때 바스락 소리를 내는
비닐같은 손가죽을 가졌기 때문에
늙은 여자가 좋다
구름을 닮아 가는 실루엣을
기교없는 음성을
눈가의 주름을
좋아한다
치욕을 먼저 잊는 망각의 기술로 여자를 잊고
달처럼 흐르고 흙처럼 젖으며 몸으로 치르는 계절
시간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파동 속에 있어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태어날 때 그랬듯 잇몸으로 울고 웃고
물말아 밥을 먹다가 문득
제사상에 바나나와 커피를 올려달라 유언하는 소리
가까운 험담은 못 듣고
먼 산 꽃 지는 건 가장 먼저 알아챌 때
어느 새벽 고요히 머리 빗는 소리
그래서 나는 늙은 여자가 좋다
좋아서 억새처럼 누웠다가
여자처럼 늙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늙은 여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