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 홍윤숙
- 望鄕詞6
눈 내리는 저녁길엔
목화꽃 지는 냄새가 난다
할머니 옛날 목화솜 지으시던
물레 소리가 난다
한밤에 펼치시던 오색 조각보 속
사각사각 자미사 구겨지는 소리 나고
매조 송학 오동 사꾸라
유년의 조각그림 몇 장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어디서 그 많은 이야기를 실어오는지
어디서 그 작은 소리들을 풀어내는지
눈 내리는 저녁길엔
눈 덮인 고향집 낮은 굴뚝담 위
굴뚝새 푸득푸득 날으는 소리 나고
한 필 삼팔명주 하얗게 삭아내린
매운 세월 넘어
어머니 젊은날 혼자서 넘으시던
오봉산 골짜기 눈에 묻힌 길
수묵으로 풀어내는 한오백년
쇠락한 歲寒圖가 있다
사십 년 걸어도 닿지 못한 나라
눈 내리는 저녁길엔
문득 그 나라 먼 길을 다 온 것 같은
내일이나 모레면
그 집 앞에 당도할 것 같은
눈 속에 눈에 묻힌 포근한 평안
더는 상할 것 없는
백발의 평안으로 잠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