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들려주는 紋章 - 차주일
거미가 실을 잣아 영역을 넓힌다
넓힐수록 좁아드는 평생 감옥을 밤새 개간한다
밭두렁 같은 그물에 붙들린 허공에서
거미가 구름을 뜯어먹고 바람을 경작한다
부대밭 다랭이 몇으로 일가를 꾸리는 여자는
거미 발동작처럼 허벅지 문질러 베실을 삼았다
삼베에서 평생 손발 떼어보지 못한 몸은 삼베를 닮아갔다
결국 제가 짠 베옷을 입고 저승 갈 어미, 가 짠
삼베수건에 얼굴을 닦던 시절이 있었다
막걸리 잡순 입술을 훔친 할아버지의 트림소리
인골 몇 조각을 그러 묶는 할머니의 아귀힘
거름냄새와 버무려진 아버지의 땀내
악보 없이도 매년 똑같은 어미의 흥얼노래
누이들의 요동치는 젖살 파동까지
모두 삼베수건에 매달려 있었다
어미가 짠 삼베는 거미줄보다 센 자성을 갖고 있다
가족들은 끼니때마다 삼베밥보 앞으로 모여들었다
삼베밥보 밑은 성지여서 밥은 순교자처럼 교교했다
허벅지가 굵어진 새끼들은 어미로 출가했다
내 유년의 성지를 다시 만난 건
출가한 지 삼십여 년 지난 한식날 선산에서였다
삼베밥보는 아직도 일가의 제삿밥을 덮고 있었다
그 삼베밥보를 모셔다 문장(紋章)으로 걸었다
밤마다 베틀 소리 하염없이 들려왔으나
문양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은폐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