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 이선욱
그러니까, 가문 벌판이었다
저녁이면 한 무리의 염소들은 그늘로 떠났고
목동의 손만 홀로 남아 벌판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서 타자를 쳤다
타자를 쳤다
캄캄한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솔가지 타는 소리가 허공에 퍼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사막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다 닳은 잉크처럼
어둠에 날리는 글씨와 함께
이따금씩 타점이 강하게 울렸으니
휘어지는 바람을 따라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목동의 손은 가벼웠다
몸은 없고 손만 남았으므로
말없이 서술하는 시간은
활자판의 중심처럼 칸칸씩 이동할 뿐
꿈꾸듯 망설이는 타법은 아니었다
다만 슬픈 꿈의 오타만이
하얀 털뭉치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궁극의 어떤 형상 같았으나
궁극에는 자라지 못할 운명이었다
자판은 타법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아니면 무언의 잦은 행갈이였을까
어딘가 어둠은 글썽거렸고
그것은 타이핑한 글씨체였다
때로는 벌판을 도는 메아리처럼
같은 문구를 연달아 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땅금 갈라지듯
목동의 손뼈가 더없이 두드러졌다
사방으로 난 길은 없었으나
벌판의 한가운데였다
끊이지 않는
서술의 발소리처럼
손끝에는 굳은살이 피어났고
그렇게 타자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은 점점 더 흐려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낙타의 뼈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달아 같은 문구를 치고 있을 때였다
모가 닳은 자판 하나를 누르는 순간
무형의 뒤늦은 타점이 울렸다
무언가 손등에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