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송이 장미에 붙인 비밀 - 박시하
엄마, 당신에게 전화를 걸면
백만 송이 장미는 왜 그렇게 서럽게 피어날까요?
엄마, 버스가 나를 그 골목에 내려놓았어요
늘 저녁이어서 깊고 어두웠지요
닫힌 문 앞에 서서 초경하는 여자아이처럼 내가 울고 있을 때
하수구로 쓸려가는 핏물 번진 눈동자들
우르르 배꼽으로 몰려와요
듣고 있나요 엄마,
아낌없이 아낌없이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장미가 정말 필까요?
당신을 닮은 나의 자궁에도 백만 송이 그 장미 피어날까요?
당신은 오랫동안 내게 사랑의 기술* 을 가르쳤지요
긴 저녁을 거슬러 푸르러진 장미의 나날,
내가 삼켰던 백만 개의 꽃잎이
백만 개의 우물 위로 떠오르고 있어요
엄마, 비밀은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왜 모든 슬픔은 배꼽에 고일까요?
내 딸이 탄 버스가 그 깊은 골목에 당도하려 할 때
당신의 울음 속에 물결치는
그 꽃잎을 타고
우리 이제 그립고 아름다운 나라로 갈 수 있나요?
* 서가에 꽂혀 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 부분에 엄마는 밑줄을 쳐 두었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모든 사람들을 그대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할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한, 그대는 정녕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